기내식 이야기 #1 ; 루프트한자 인천→뮌헨(+바르셀로나) dinnershow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던 어린 시절(상당히 범위가 넓은), 기내식은 내게 있어 뭔가 로망 그 자체였다. 그토록 거대한 철덩어리가 가뿐히 하늘을 난다는 것도 보는 것만으로 경이로움 그 자체인데 그 안에서 사람들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똥도 싼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늘 위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다니.

그 중에서도 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건 대단히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여겨졌다. 처음엔 기내식이라는게 이유식 비슷한 거라고 막연히 추론하기도 했다. 비행기 안에서 먹는 밥이 얼마나 제대로 되어있겠냐며. 그러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후기', '인증샷'이 활성화되며 나는 수많은 여행객과 출장자들이 올린 기내식 사진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좀 감동했다. 생각보다 제대로 된 음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빠순질 때문이지만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게 됐을 때 나의 심장은 폭발 직전이었다. 처음으로 나가는 해외에 대한 설렘은 물론이거니와 드디어 기내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거짓말 안하고, 기내식 첫 경험에 대한 벅찬 기대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시간 2시간 40분은 보통 코스로는 기내식이 나오기 어렵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예약한 비행기 시간이 우연히 점심시간이었기에 나는 처음으로 기내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때 내가 탔던 비행기는 JAL이었고, 기내식은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하지만 기내식이 서브되는 순간의 설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저 멀리서 카트를 끌고 오며 상냥하게 기내식을 나눠주는 스튜어디스 언니의 미모처럼.

안타깝게도, JAL 이후 나는 좀처럼 기내식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 두 번 정도 더 비행기를 탔지만 모두 저가항공이었고, 기내식을 먹을만한 시간을 이동하지도 않았으며, 점심이나 저녁, 혹은 아침에 타지도 않았기 때문에 내가 비행기에서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삼다수와 삼각김밥 정도였다.

그러다 내 기내식 라이프에 변화가 생긴건 지금 직장에 들어오고 난 후였다. 신입도 일년에 두 번 정도는 해외출장을 갈 수 있는(혹은 가야만하는) 환경 덕분에 나는 입사 후 반년이 조금 지났을 때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7시간이 넘는 비행도, 두 번의 기내식도 내 인생 처음이었다. 그 때는 아시아나였고, 나는 아련한 기억을 뒤져 내 첫 기내식이었던 JAL이 얼마나 쓰레기였는지 알게 됐다(...)

여튼 그런 삶을 살았다. 아니,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종종 출장을 간다. 지인들은 막연히 부러워하는 해외출장길은 언제나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차있다. 동료도 없고 적만이 산재하다. 정보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다 같은 아이템에서 더 특출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해외출장까지 온 보람(이라고 쓰고 면피라고 읽는다)을 찾기 위해 우리는 매번 치열하게 경쟁하고 그래서 출장길은 전쟁이다. 즐겁지만 부담스러운 해외출장. 그 해외출장길의 몇 안되는 낙은 역시, 기내식이었다.

이번에 가게 된 출장에서 나는 루프트한자를 처음 타봤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독일 뮌헨을 경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새로 맛보는 항공사의 기내식은 언제나 즐거움이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비행이 시작되자마자 기내식을 기다렸다. 루프트한자는 특이하게도 메뉴판을 먼저 나눠주는데, 이 메뉴판이 꽤나 즐겁다. 

두 가지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할 때는 우선적으로 고기를 선택해야하는 법. 안내방송에서 안심요리가 수량이 적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조금 긴장했는데, 의외로 잡채밥(한국식 당면요리...!)를 선택한 사람이 많아 안심하고 안심을 먹을 수 있었다(..!?) 

사실 기내식의 한계, 그것도 이코노미의 한계는 분명하기에 거창한 요리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일단 먹는 자리가 불편하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 안심스테이크를 써는데 테이블이 달린 앞 의자가 들썩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꾸덕꾸덕 썰어서 한 입 먹어보니 그래도 맛은 나쁘지 않았다. 굽기 정도를 선택할 수야 없지만, 꽤나 공이 들어간 기내식이라는 느낌이었다. 과일은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서였는지 과연 적당히 신선했다. 

저녁식사로는 매콤한 한국식 닭다리 볶음을 선택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식 매운 맛은 아니긴 했는데 닭과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중화되는 느낌. 그리고 디저트가 생각보다 훌륭했다. 당도가 높아 나한테는 잘 안맞았지만 사과치즈케이크가 맛있었다. 다른 평을 읽어보니 루프트한자 기내식에 나오는 브라우니가 정말 괜찮다던데, 아쉽게도 이날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루프트한자의 가장 큰 강점은 역시 바로 이것이다.

루프트한자 기내식 메뉴판에도 당당하게 표기되어있는 '독일맥주'. 실컷 맥주와 프레즐을 즐길 수 있었다. 맥주는 바르슈타이너가 제공되는데, '맥주의 여왕'이라는 평답게 기내에서 먹기 좋은 깔끔함과 청량함, 목넘김이 부드럽고 거품이 풍부한 장점이 있다. 11시간 40분의 장거리 비행 동안 내 배를 든든히 불려준 바르슈타이너는 루프트한자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물론, 바르슈타이너를 제외하고도 두 잔의 와인과 두 잔의 위스키를 실컷 즐기며 취중비행을 만끽했지만).

 이렇게 실컷 먹고 마셔도 11시간 40분은 역시 길었다. 마감치고 바로 넘어가느라 잠도 거의 못 잤는데도 잠이 안와서 내내 가수면 상태로 피로만 두 배 이상 쌓이는 역효과가. 그래서 영화나 보려고 결심하고 마침 영화관에서 못본 호빗2 스마우그의 폐허와 바람의 검심을 봤다. 독일맥주 마시면서 보는 영화는 나름 재밌더라.

그리고 길고 긴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뮌헨 공항에 입성. 독일의 제2허브 공항답게 내려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면세구역으로 넘어가자마자 사람들이 바글바글. 그리고 먹을 것도 바글바글. 독일 소세지와 맥주가 곳곳에서 향긋한 풍미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 11시간 40분 동안 채우지 못한 흡연욕구를 채우고,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그제서야 환승을 위해 이동했다. 

뮌헨에서 바르셀로나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2시간 20분 정도 걸리는데, 이 때도 역시 루프트한자를 이용했다. 루프트한자의 에어버스에서는 따로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고 탑승 후 샌드위치를 제공한다. 호밀빵에 터키와 살라미가 들어있는 짭쪼롬한 샌드위치는 맛있지만 어쩐지 먹고나서 더 허기지는 느낌을 주더라. 터키와 살라미를 아낌없이 넣어서 그런지 한 입 베어물고 바로 짜가운 맛을 느꼈다... 나처럼 염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짜갑게 느낀거면 정말 짜가운 것이 아닐까! 여튼 2시간 20분 동안 버티기에는 적당한 양과 맛이었다.

기내식 이야기하다 여기저기로 많이 새기는 했지만(사실상 비행일기가 되어버렸다) 결론은 루프트한자 이코노미 기내식은 꽤 먹을만했다는 것. 그리고 특히 기내에서 제공하는 독일맥주가 즐길만 하다는 것.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쿨쿨 쳐자느라 기내식을 한장도 못찍고, 심지어 아침 기내식은 놓치기까지 하는 바람에 조금 아쉽다. 다음에 또 루프트한자를 타게 되면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봐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5월달에는 포르투갈이라도 가보는 것이 어떨까...

덧글

  • 푸른별출장자 2014/03/19 21:59 # 답글

    포르투갈과 스페인, 이태리는 기내식을 굶어서라도 배를 비워 놓아야 합니다...

    그 진수성찬들을 냅두고 기내식 따위에게 양보할 배는 없기에...
  • 사월십일 2014/03/19 23:01 #

    도착하는 시간이 한밤이었기에 기내식으로 배를 불려뒀습니다 ㅎㅎ
    아 그동네 진수성찬이 그리워지네요ㅠㅠ
  • 飛流 2014/03/20 00:14 # 답글

    바르슈타이너가 제공되다니!!! +ㅠ+ 으억!!! 과연.....
    기내식은...뭐 이래저래 말들은 많지만 일단 다
    깔끔하게 비우게 되더라고요 ㅎㅎㅎ 전 JAL도
    꽤나 괜찮게 먹었습니다. 근데 그 괜찮게 먹은
    게 본 식사가 아니라 후식으로 제공된 슈크림...ㅋㅋ 과연 빵의 나라 하며 우걱우걱 먹었죠 ㅎㅎㅎ
  • 사월십일 2014/03/26 18:34 #

    그쵸 먹고 자는거 빼면 비행기서 할 일이 별로 없기도 하고...ㅎㅎㅎ
    바르슈타이너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건 정말 장점입니다. 근데 JAL에서 후식으로 슈크림을 줬군요. 저는 못받아서 기억에 남지 않았나봅니다(분개)
  • 따뜻한 맘모스 2014/03/20 16:39 # 답글

    비행기에서 뭘 하길래 의식주를 해결하죠? 의식주 뜻이 그런거였나
  • 사월십일 2014/03/26 18:35 #

    제가 쓰고 다시읽어도 이상하긴 하네요 ㅎㅎ 뭔가 격리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열 몇시간씩 거기서 지내는 느낌이 생활의 변주같아 쓴 말인데 단어선택에 문제가 있었던 것같아요
  • 홍보살 2014/08/07 16:43 # 답글

    한자나 한자 교육이라고 쓰면 항상 뜨는 루프트 한자 군요 ㅋ
    무슨 여행이든 여행은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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