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없는 우즈베키스탄 출장기 # 3 그래도 우선은 관광 across the universe

앞에서도 쓰긴 했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고시환율대로 돈을 바꾸는 건 멍청한 짓 취급을 받는다. 1달러에 1300~1500숨에 불과한 고시환율과 달리 암시장에 가면 2100~2300숨 선에서 바꿔주니까, 엄청난 손해인 셈. 이런 암시장 환전을 막기 위해 곳곳에 경찰들이 깔려있지만 그래도 다들 일상처럼 하는게 이런 암시장 환전... 물론 한국사람들이 하기엔 여러모로 쉽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우리는 우즈베키스탄 가이드 친구가 있어서 환전을 좀 편하게 했다. 보통 한국사람들은 타슈켄트 시내에 있는 한인식당에서 주인들을 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한인식당의 환전률은 작년 9월 당시 1달러에 1800~1900숨 정도. 동전도 없이 5숨, 10숨, 뭐 이런 식으로 자잘하게 나뉜 지폐들을 뭉텅이로 들고 다니면서 계산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던지. 우즈베키스탄 현지 사람들은 현금카드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걸로 결제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외국인들이야 짤없이 비닐봉투에 지폐덩어리(...)를 들고 다녀야한다. 

이전 포스팅에도 올렸지만 100달러만 바꿔도 이만큼이 된다. 묵직한 손맛은 부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과자 하나 사먹어도 지폐 몇 장이 술술 나가니까 상대적 박탈감도 느껴지고. 미묘하다. 하지만 뭐 불편하면 알아서 바꾸겠지요. 아직 버틸만하니까 화폐개혁을 하지 않는거겠지, 라는 그런 생각. 그래도 정말 이 숨은 너무 하다.

가이드와 합류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호텔 뒤쪽의 한인식당에서 우선 100달러를 교환하고 멍을 때리고 있었다. 일정이 없는 낮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12시에 맞춰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도착했다. 현지인 가이드 콘스탄틴과의 첫 만남.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안마의자(...) 위에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콘스탄틴. 22? 23살이었던가. 한국으로 교환학생도 왔었다는 이 우즈베키스탄 청년 덕분에 7박8일의 출장을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한국말도 잘하고 많이 친해져서 참 좋았는데, 첫 만남에서 우리 일행의 나이 맞추기를 하다가 곤혹스러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국인들 너무 어려보인다며 얼굴을 감싸쥐던... 그래 맞아 나도 니가 우리 또래는 될 줄 알았어. 피차 당혹스러웠던 액면가...

여튼 콘스탄틴에게 오후 일정 전까지 시내에서 돌아볼만한 곳이 없을까-물었더니 시내 몇 군데를 둘러보러 가자고 했다. 함께 간 다른 사진선배가 쇼핑광이어서 아울렛ㅋㅋ 중심으로 좀 돌자고 했더니 독립광장을 지나 국립역사박물관과 브로드웨이 거리, 나보이 국립극장을 보여줬다. 우즈베키스탄어로 무스타 낄릭이라는 이름의 독립광장은 구소련 시절 레닌광장으로 불렸던 곳인데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후 독립광장으로 바뀌어 이제는 데이트, 산책 코스로 종종 애용된다고.

독립광장에 있는 '슬퍼하는 어머니상'이다. 꺼지지 않는 불꽃을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모습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들을 그리고 있다고 콘스탄틴이 설명해줬다.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봐주고 있는 거라며. 바로 곁에서 프랑스인 노부부가 진한 감동이 묻어나는 얼굴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바람 한 점 없이 찌르는 듯한 태양이 쏟아지는 9월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전쟁이 스치고 간 흔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면서 전쟁기념관이나 거제도 포로수용소 같은 곳을 갈 때마다 느꼈던 그런 북받치는, 학습된 그 이상의 슬픔같은 감정들이 타국에서도 유사하게 발현할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자밀라의 나라, 김태희가 밭가는(...) 나라 그 이상의 생각도 지식도 없었던 우즈베키스탄도 구소련의 독재와 세계대전의 칼바람은 여지없이 스치고 갔구나. 뭐 그런 생각들. 약간의 감정적 동요. 

슬퍼하는 어머니상 바로 옆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돌아오지 못한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적힌 동판을 열람할 수 있는 기념관같은 곳이 있다. 읽을 수 없는 문자로 쓰여진 이름이지만 공연히 동판을 넘겨가며 이름을 읽기 위해 애써봤다. 견학을 온 것인지,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은 한 무리의 아이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동판을 보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새까만 눈은 있는 힘껏 호기심을 내지르고 있었다. 너는 누구야, 어디에서 온 사람이야,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누구고 왜 여기에 와있을까. 정말 오묘한 기분이었던 그 날의 무스타 낄릭 광장.

사실 여기가 무스타 낄릭 광장의 메인이다. 피에타를 연상시키는 저 모자상은 1991년 우즈베키스탄의 독립 이후 저 자리에 놓였다. 원래 모자상이 있던 자리에는 레닌 동상이 있었다고 한다. 쨍한 하늘 아래 모자상, 그 위의 지구본에는 우즈베키스탄 최전성기 당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콘스탄틴은 "보통 여기서 사진을 많이 찍는다"며 사진 찍기를 강권했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는 날 씨에도 포토그래퍼의 혼을 불태우는 선배의 지령에 따라 네 명이 돌아가며 줄줄이 사진을 찍었다는 그런 이야기. 

무스타 낄릭 광장에서 나와 지하철을 지나 여기저기를 걸었다. 국립역사박물관도 보고,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그림을 내놓고 파는 한 무리의 좌판도 봤다. 콘스탄틴의 이야기도 몇 가지 들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징병제가 아니기 때문에 군대에 갈 의무가 없고, 군대에 가려면 오히려 돈을 내야하는데(그것도 꽤 비쌌던 걸로 기억) 군대에 가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복무기간은 최소 한 달 내외로 짧은 편이라지만, 군대에 가있는 동안 당연히 일도 못하고 군인생활을 해야하는데 그런 모든 것들을 감내하고서라도 얼른 돈 모아서 군대에 꼭 다녀오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서 전역하신 사진 선배들과 동기 오빠는 콘스탄틴의 이런 꿈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ㅋㅋ) 그리고 군대에 다녀와서는 어머니와 이모를 모시고 한국에 꼭 한 번 놀러오겠다는 그런 이야기도.

수다를 떨며 걸었더니 너무 덥고 너무 목이 말라서(사막지대다보니 우즈베키스탄은 탄산수를 많이 판다. 나는 탄산수를 못먹어서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내내 sparkling 이라는 단어만 봐도 토할 지경이었다) 어딘가 좀 들어가자고 콘스탄틴을 종용했다. 커피를 찾는 우리들에게(레바논에도 있는 스타벅스가 우즈베키스탄에는 없다!) 콘스탄틴은 자기가 자주 가는 카페라며 길가의 어느 카페로 안내했다. 

 대학가 카페같은 분위기. 일하는 언니들이 예뻤다(...)고 기억함. 더위에 지쳐버린 우리는 간단한 요기거리와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키릴문자로 된 메뉴판을 들여다보다 기권했고, 콘스탄틴이 우리를 대신해 주문에 나섰다. 몇 가지 케이크와 샌드위치,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식 팬케이크와 함께 커피가 나왔다. 커피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디저트의 맛은 훌륭했다.

특히 저 팬케이크가 아주 맛있었는데, 엄청나게 얇게 구워내 팔랑팔랑거리는 빵에 꿀같은 소스를 뿌려 먹는다. 꿀과 대단히 비슷한 맛의 달디단 소스인데, 꿀은 아니라고 했고 우즈베키스탄어로 뭐라뭐라 알려줬는데 이름이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팬케이크를 폭풍찬양하며 광속으로 흡입하자 콘스탄틴은 대단히 만족스러워했고, 자기 어머니가 이 팬케이크를 무척이나 잘 만든다고 아침으로 자주 먹는다고 설명도 덧붙였다. 나중에 많이 만드시면 가져다 주겠다는 약속도 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기회는 없었다.

잘 먹고 나면 남는 것은 고뇌의 시간이다. 돈 계산을 해야하는데 지폐가 뭉텅이로 잘려나가는건 둘째치고 숫자 세서 돈 맞추기도 곤욕스럽다. 머리를 맞대고 지폐를 나누고 있는 세 남자의 힘겨워보이는 뒷모습(...) 우즈베키스탄이 화폐개혁을 하지 않는 이상 이곳을 여행하는데 있어 최대의 난제는 역시 돈 계산이다ㅠㅠ 





덧글

  • mahina 2013/08/21 09:50 # 답글

    너무 재밌어요 ㅋㅋ 다음 편도 궁금합니다.
  • 사월십일 2013/08/21 16:32 #

    재밌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곧 올릴게요 흐흐.
  • wan 2013/08/21 09:59 # 삭제 답글

    클릭한번 했다가 3편까지 멈출수가 없었네요.
  • 사월십일 2013/08/21 16:32 #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D 더 재밌게 써야하는데 필력이 없다보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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