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뱀(花と蛇; Flower and Snake)> 2003 sukida


단 오니로쿠(團鬼六)를 흔히들 일본의 사드 후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에게 그런 명성을 안겨준「꽃과 뱀」시리즈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데 가장 공헌한 것은 역시 닛카츠와 이시이 다카시가 아닐 수 없다. 6, 7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닛카츠의 로망 포르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집착(!)은 단 오니로쿠라는 전무후무한 작가의 텍스트들과 결합하여 하나의 전설적 영상으로 부활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빛났던 '폭주하는 SM의 제왕'*이 바로 이시이 다카시 감독이다. 닛카츠 로망포르노와 관능만화계 양대 산맥에서 걸출한 재능을 발휘하며 그 넘치는 열정과 재능을 마음껏 뽐냈던 이시이 다카시에게 단 오니로쿠는 가장 매력적인 파트너이자 결코 놓칠 수 없는 인스피레이션의 샘이 아니었을까.

단 오니로쿠와 닛카츠, 이시이 다카시와 여왕처럼 아름다운 스기모토 아야가 만난 영화,「꽃과 뱀」은 -이런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사실 지극히 아름다운 영화다. 단 오니로쿠의 소설이 그랬듯이 극한까지 몰아가는 파괴적인 상황설정이나 폐쇄적이고 고립된 장소, 범하고 범해지는 현실에서의 탈출이라는 모든 것에서의 탈출 조건은 결국 궁극의 섹스이며, 몸을 그릇으로 하는 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반드시 아름다워야 할 것을 전제당하고, 스기모토 아야의 아름다움만이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소위 BDSM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 있다. 통상적인 관념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한없이 천대받고 변태성욕이라고 매도당하지만 쾌락을 얻는 루트가 평이하지 않을 뿐이지(실상 그 평이하다는 관념은 얼마나 역겨운지!) 무엇보다도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가학피학성애의 왕도,「꽃과 뱀」은 즐겁게 이 것들을 스크린 위에 풀어놓는다.

파괴적인 SM의 결말이 반드시 죽음인 것처럼 생각되거나 묘사되는 것은 그것이 스너프의 일종이기 때문일까. 피투성이의 육체에 환호하고 흥분하는 것은 우리 안에 감춰진 나쁜 피의 본능일 것이다, 라며 고고하고 깨끗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질색을 할 것은 자명한 일.

「꽃과 뱀」이 무엇보다도 그냥 보고 버려도 될만한 삼류 에로 무비로 분류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스기모토 아야의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나는 빠니까;) 이시이 다카시는 그 괴악한 카메라 워크나 앵글 샷으로 더욱 더 인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해 냈다. 2003년 당시의 스기모토 아야가 마흔에 가까운 나이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실로 놀라울 정도이다.
단 오니로쿠는 1974년에 닛카츠에서 제작했던 동명의 영화를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3년 판, 이시이 다카시와 스기모토 아야의「꽃과 뱀」은 퍽 그의 마음에 드는 작품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순한 SM계 에로 무비나 닛카츠 로망 포르노 계열 중에서도「꽃과 뱀」이 내게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수단적이고 방법론적인 SM의 목적성이 그들의 의도와는 다를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 미학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내 편집자조차 SM과 잔혹함을 종종 헷갈리곤 한다. 나에게 징벌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지만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 나의 SM에 대한 개념은 일그러진 성적 욕망. 혹은 극단적인 상실감이다. 이것은 굴욕감으로 고통받는 미녀를 보는 사랑으로부터 파생된 남자들의 판타지다. 그러므로 내 스타일은 로맨틱하고 미학적이며 때로는 데카당스한 향취가 있다.” (단 오니로쿠)

스기모토 아야, 참 데카당스한 미녀 아닌가:D

덧글

  • poxen 2009/01/02 16:09 # 답글

    내 기억이 맞다면- 2002년에 아라키 노부요시가 했던 전시와 이 영화가 참으로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구나. 훗훗, 우린 같은 선상에 있다능!
  • 사월십일 2009/01/02 16:11 #

    아아아아어어어 나 긴바쿠 시리즈 엄청 좋아했는데요... 언니 우린 운명인가요
  • 사사사삿서 2017/06/08 01:43 # 삭제 답글

    피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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