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2월 08일
꿈 이야기
꿈에서 나는 한마리 먹장어였다. 밤의 바다는 어슴푸레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나는 수많은 먹장어 동료들과 함께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어딘가 부들부들하니 닳아빠진 것들이 미끌거리는 배 아래를 스치어 지나갔다. 경쾌한 썩은내가 현기증 날 정도로 어지럽게 풍기고 있었다. 나와 나의 동료들은 미친듯이 몸통을 흔들어대며 썩은내가 풍기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물살을 가르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자 껍질 밑에 묻힌 연약한 시야 안쪽으로 희미하게 부식되는 어떤 것이 형체를 띠었다. 항상 그렇듯, 눈보다는 코가 더 예민한 우리는 킁킁대며 그것의 냄새를 맡았다. 익숙하지만 최근 들어 맡아보지 못했던 냄새, 잔향이 진하게 남고 어딘지 노린내가 조금 섞인 이 썩은내는... 아주 거대한 쇠고래의 시체에서 나는 냄새였다. 우리는 기쁨으로 환호하며 몸통을 맹렬히 흔들었다. 구물거리며 쇠고래의 시체에 안착하자 썩어 문드러지는 것 특유의 기분 나쁠 정도로 기괴한 부드러움이 나의 몸통을 오롯이 감쌌다. 나는 뜨거운 눈밭에 파묻히듯 그 썩어가는 살점 위에 자리를 틀어잡았다. 나는 턱이 없어서 여덟개의 촉수와 뾰족한 치설을 박아넣고 매달려 몸을 흔들었다. 유기적인 운동 과정의 끝에 자그마한 기포를 낳으며 살점이 흔들려 떨어져 입 속으로 들어왔다. 쇠고래는 한 눈에 봐도 삼십여년 이상을 살아온 거대한 놈이었다. 아마도 몸길이가 족히 15m는 될 것이다. 무리에서 떨어진 노쇠한 쇠고래가 범고래떼의 습격을 받아 떨어진 듯 아래턱과 꼬리 끝이 너덜너덜하게 헤져있었다. 범고래들은 도통 식량이 아까운 줄을 모른다. 하긴, 언제라도 사냥할 수 있다는 종족적 자부심이 가득한 놈들이니까. 나와 나의 친애하는 먹장어 동료들은 흔히들 그렇듯 범고래들의 천인공로할 낭비를 개탄하면서도 그들이 남긴 쇠고래의 시체에 매달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속속들이 빨아먹는 것이다. 살점을 파먹자 하얗게 영근 고래심이 박테리아처럼 물 속에서 뿌옇게 피어올랐다. 포자처럼 번져가는 살점의 잔해들은 먼지 같았고, 쇠고래가 마지막으로 뿜어내는 숨의 흔적 같기도 했다. 나는 갑자기 쇠고래의 고기를 씹어넘기는 것이 썩 쓰라려졌다. 내 옆에서 둥글게 똬리를 틀고 쇠고래의 배를 공사하듯 쏠아먹던 동료 먹장어가 의아하게 내 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저 문득 모든 섭식의 행위를 중단한 채 그 거대한 쇠고래의 아랫배 위에서 침묵하였다. 아랫배 근처에 길게, 범고래에게 물어뜯겼음이 분명할 선명한 상처자국이 남아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피냄새조차 남지 않은 그 헐어버린 상처자국 근처의 물살이 부드럽게 갈리고 아주 느릿한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잠보상어였다. 잠보상어는 포식자 상어처럼 위풍당당하게, 그러나 과연 잠보처럼 느릿하게 심해의 바닥 근처에 배를 대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먹장어들은 잠시 고개를 들어 잠보상어쪽을 주의깊게 살피다가 이내 다시 쇠고래의 배때기에 얼굴을 파묻고 살을 파먹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는 오직 그 잠보상어의 뒤에서 반짝이며 수면으로 다가가는 해파리군을 쳐다볼 뿐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식욕이 사라져있었다. 쇠고래의 썩은내는 이 이상의 달콤함이 없을 정도로 몸 안의 모든 감각을 날카롭게 충동질하고 있는데도 살을 씹을 의욕이 들지 않았다. 껍질 아래 파묻힌 눈이 뒤굴뒤굴 굴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아주 밝은 빛이 점멸하고 있을 수면의 위, 그 근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파리는 우아하게 촉수와 구완을 접었다 폈다하며 능수능란하게 그 빛 근처까지 날아오르고 있었고 길게 이어진 포말의 꼬리에 장식되듯 떨어져내리는 거뭇한 것과 대비되어 훨씬 아름다워보였다. 촉수가 뒤집혀 순간적으로 연판이 바다빛깔로 물들어 펄럭였다. 거뭇한 것은 아주 작은 파장을 그리며 부드럽게 가라앉고 있었다. 낯설은 냄새였다. 쇠고래의 달콤한 썩은내에 취한 동료들은 아직 그 거뭇하고 작은 것이 내뿜는 냄새를 채 맡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자꾸만 비상하는 해파리의 주위에서 부서지는 빛과 그 아래에서 검은 실루엣을 그리며 가라앉는 거뭇한 것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육지 특유의 건조한 썩은내가 바다 깊은 곳까지 와닿지 못하고 물과 물 사이에 섞여 부딪혀 이내 사라졌다. 터럭이 진 머리카락과 몸을 감싼 아마포 자락이 켈프처럼 흔들렸고 감긴 눈 근처에서 말라붙은 태양의 냄새가 희미하게 흘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쇠고래에 정신을 못차리고 달려들던 동료들과 느긋하게 입을 대고 살점을 파먹던 잠보상어까지 그 거뭇한 것의 존재를 알아채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래로 아래로 강하하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무너진 성의 잔해처럼 거대하게 누워있는 쇠고래의 헤져빠진 살점 사이사이에서 고개를 들어 느리게 강하하는 사람의 시체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흡사 새로운 이종족의 신을 맞이하는 자들처럼 보였을 것이리라 홀로 그렇게 먹장어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나는 꼬리로 쇠고래의 살점을 밀어 차냈다. 부글거리는 기포가 나를 도탄처럼 밀어냈고 나는 가라앉는 시체를 향해 헤엄쳤다. 우주를 유영하듯이, 부드럽고 또 먹먹하게.
어린 것도 같고 노회하게도 보이는 여자의 시체는 핏기가 모두 빠져 나간 얼굴로 창백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나는 뺨에 얽힌 머리카락에 파고들어 턱도 없는 입으로 환희의 노래를 불렀다. 갓 썩어들기 시작한 시체에서 풍기는 풋과일처럼 달큰하고 상큼한 향이 나를 미칠 것 같은 환희로 강하게 자극했다. 물에 불어 흐물거리기 시작한 그 살점을 지금 당장이라도 파먹고 싶어 안달이 난 내가 그녀의 뺨 근처에 몸을 문대며 촉수를 박아넣는 순간 그녀가 반짝 눈을 떴다. 짧은 속눈썹 안쪽 새카만 동공이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껍질에 덮혀 채 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조각내어 담으며 비명을 질러 올렸다. 나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녀를 쏠아먹었을까. 두개골 근처에 한두조각 남아있는 살점을 청소하듯 세세하게 파먹으며 나는 유달리 꺼지지 않는 포만감과 동시에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공복감에 허덕였다. 결코 혼재할 수 없는 두가지 감각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고 나는 그녀의 갈비뼈 안쪽 좁고 둥그런 공간으로 헤엄쳐 기어들어가 몸을 둥글게 꼬아 말았다. 밤이 되면 미광층 아래의 주민들이 수면 근처까지 올라온다. 그들은 투명하고 반짝이는 신기한 몸뚱이를 가졌고 그녀의 삭아가는 뼈 아래에서 그들의 윤무를 보는 것은 썩 괜찮은 휴식방법이었다. 나는 내가 파먹은 나의 시체가 남긴 뼈 아래 길게 누워 곧 다가올 완전한 어둠의 시간을 기다렸다. 수면 아래 깊은 바다 근처, 조금만 더 깊이 내려가면 온전히 해가 닿지 않는 그 곳에 누워.
# by | 2010/02/08 11:07 | Ideal, logic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