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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토 쯔요시 헤이안신궁 라이브, 츠츠미 유키히코가 영화화!

킨키키즈・도모토 쯔요시(32)의 라이브가 츠츠미 유키히코(56)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 작년 9월, 교토 헤이안 신궁에서 열린 도모토 쯔요시의 솔로콘서트「平安結祈 heianyuki」가 2월 24일부터 전국 60개 이상의 영화관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라이브 영상의 극장 공개는 쟈니즈 사무소 소속 탤런트로서는 처음이다. 도모토 쯔요시도 "일본의 행복, 세계의 행복을 기원하며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살아가는 것, 그 소중함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음을 만들어나갔더니, 저 자신으로서도 실로 오랜만에 눈물이 넘쳐흐르는 무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라고 돌이켜보는 바로 그 무대가 츠츠미 감독의 메가폰에 의해 되살아나는 것이다.

도모토 쯔요시는 2009년부터 절이나 불각 등의 장소에서 콘서트를 열어왔다. 그의 솔로콘서트는 티켓을 손에 넣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 만점의 공연이다. 이번 영화는 도모토 쯔요시 측에서 의견을 제시하여 작년 여름, 츠츠미 감독에게 라이브 영상 촬영을 타진한 것을 흔쾌히 수락하면서 결정되었다. 본격적인 영화화 프로젝트는 올 해 1월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모토 쯔요시의 첫 주연영화인「김전일 소년의 사건수첩-상해인어전설(金田一少年の事件簿 上海魚人伝説)」이후 14년만에 함께 작업하게 된 츠츠미 감독은 "도모토 쯔요시 개인의 인간성이 드러날 수 있는『음악』에서의 작업이 가능해서 기쁘기도 했고, 더구나 이 작업이 극장에서 상영된다는 형태로 결실을 맺는다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 도모토 쯔요시의 문화재 콘서트 : 지난 2009년 처음으로 고향인 나라・야쿠시지(薬師寺)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그 후 2년 연속 야쿠시지에서 공연 후, 2010년에는 헤이죠쿄(平城京) 천도 1300년을 기념하는 콘서트를 나라・국영아스카역사공원(国営飛鳥歴史公園)에서 실시했다. 또한 2010년부터 헤이안 신궁에서의 콘서트를 시작하여, 작년에는 각 공연마다 5000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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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스포츠 호치. 
여전히 형님은 에너제틱하게 움직이고 계십니다. 아, 라이브 공연 영화화라니.
여전히 멋지고, 여전히 훌륭하다.



원문보기 <キンキ・剛のライブ、堤幸彦監督が映画化>

by 사월십일 | 2012/01/21 15:19 | 244 ENDLI-x | 트랙백 | 덧글(0)


2011 간사이 여행 하나, 여행을 떠나요

득 나는 생각했다. 일을 그만둬야겠다. 그리고 또 문득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야겠다.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야 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친밀한 관계도 아닌 두 문장은 연쇄적으로 뇌 안에서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시냅스와 뉴런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비이성이 귓가에 악마처럼 속삭였다. 자, 지금 당장 네 잘난 직급을 벗고 대표한테 뚜벅뚜벅 걸어가서 당당히 외쳐. 이 개같은 놈의 회사, 나 지금 당장 그만 둔다! 하고.


물론,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차분하고 부드럽게-몇 번의 콜록거림과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발라 하얗게 뜬 얼굴과 잔뜩 잠긴 목소리로-퇴직을 요청했다. 난감함과 일개월의 보류기간 동안 애매하게 이어지던 협상의 줄다리기가 어찌어찌 끝났을 무렵, 이곳저곳에 단풍의 붉은 빛이 오묘하게 얹혔을 그 무렵 나는 다 해봤자 작은 박스 한꾸러미도 되지 않는 내 짐을 챙겨들고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추위가 본격적으로 덤벼들기 시작한 11월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끊은 일본행 비행기 티켓이 품 안에서 팔락였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여행 한 번 가겠다고 회사를 때려치나 싶은 물음표가 옹달샘처럼 퐁퐁 솟았다. 보다 현실적인 핑계로, 여행은 구실일 뿐이고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고 옹달샘에 비친 내가 대답했다. 흠, 뭐가 어찌 되었든. 달력과 호치키스, 시계와 머그컵이 든 상자를 품에 안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사를 나선 나는 「자유」라고 쓰고 「방종」이라고 읽는 날개를 꺼내어 달고 하늘을 날았다. 잿빛 하늘에 풍덩 빠진 백수의 일탈은 구름보다 가벼웠다.


어쩌다보니 일을 그만두고 싶어진 때가 마침 비수기에 딱 들어맞았다. 덕분에 오사카행 저가항공 비행기 티켓은 삼십만 원 남짓했다. 이야, 도쿄에 비하면 싸지. 엄청 싸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얼마 남지 않은 출발일을 되새김질했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 역마살이 들었다고도 하고, 평생 곤궁할 팔자라고도 했다. 사주와는 영 인연이 없었던 나지만 갓난쟁이 나를 데리고 난생 처음 용한 스님에게 사주를 보았다는-왜 스님이 사주를?- 옛날 옛적 부모님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도화살에 월살, 역마살 삼종세트를 골고루 물려받고 인생이 녹록치 않을 운으로 태어났다고 했다. 이왕 그렇게 태어난 거 그렇게 살아야지. 그래서 난 내 삶이 지시하는 대로 떠나고마했다. 2011년 11월, 1이 무수히 많던 날의 결정이었다.


남들은 십년도 일년처럼 개미같이 일한다던데, 나는 일년을 십년처럼 일했으니 이건 나의 끈기 없음이 문제다. 일본어로는 끈기를 粘り強さ(네바리츠요사)라고 한다. 나는 그 粘り強さのない人間이었다. 지난 겨울 제주도 여행 이후로 처음 끊어보는 제주항공 비행기 티켓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하품을 하고 침대 위에 뒹굴자 백수가 되었다는 실감이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일을 그만둔 첫날은 그래서, 도롱이 속의 벌레처럼 하루 종일 잠만 잤다. 꿈에서 만리장성을 걷기도 했다. 일본여행을 앞두고 만리장성이라니. 하지만 꿈이니까.


天保山大観覧車IN大阪港




by 사월십일 | 2012/01/18 15:53 | Ride on shootingstar | 트랙백 | 덧글(0)


12th, Jan, 2012. 새해의 첫 단상들.


1.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던 사람인지 요새 자꾸 잊고 만다. 권태가 습관이 되고 게으름이 일상이 되면 나는 나를 자주 잃고 놓치게 된다. 쓰는 것에 대한 습관적인 갈망의 유지 역시 그렇다. 쓰는 것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하얗게 펼쳐진 워드창에 명멸하는 커서를 망연히 바라보다가 이내 꺼버리고 마는 것이 현실이고 내가 서 있는 곳이다. 보다 열심히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5. …하여 나는 괴로움을 맛보는 자신을 오랜만에 마주하고 머리가 먼저인지 꼬리가 먼저인지 모를 감정들 때문에 배회한다. 누군가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품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의 시침은 아주 빠르게 과거를 향해 달려간다.

7. 그렇게 잃어버린 인연들에 대한 안타까운 그리움을 또 시작한다. 보다 오래, 보다 깊게, 보다 사랑하며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 앞으로도 그러지 아니하리란 보장은 없다. 삶이 버겁고 무거웠던 것처럼 애써 자신을 포장하며 잃어버린 관계에 대한 부끄러움을 정당화하려는 노력이 더 부끄럽다는 사실을 씀으로써 받아들인다.

10. 그러니, 현재 있는 것들에 충실해야함은 물론이다.

by 사월십일 | 2012/01/13 00:5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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